Warm War
따뜻한 전쟁
2018.12.28 - 2019.01.03
Art Mooak, Seoul 무악파출소, 서울
Supported by Art Mooak
후원: 무악파출소
마우스가 산만하게 딸깍거린다. 세계의 상품들을 유영하듯 마우스 휠이 미국의 오더-메이드 플랫폼을 넘나든다. 머그잔, 텀블러, 샤워 커튼, 베개, 티셔츠, 에코백 등의 일상적 소품들이 나열된다. 거기에 덧대어진 이미지들이 한눈에 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시각 이미지들이다. 위대한 영도자의 환한 미소부터 북한 체제의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텍스트, 또 그와 유사한 색감과 어법을 패러디하며 ‘구제’와 ‘힙함’을 넘나드는 디자인까지, 일상적 소품은 ‘북한’이라는 키워드로 엮인다. 반재하의 싱글 채널 영상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의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반재하 작가의 두 번째 유통 프로젝트다. 이번 <따뜻한 전쟁(Warm War)>은 지난 냉전(cold war) 시대의 잔재였던 이미지들이 희한하고 특별한 주문 제작 상품으로 변모하는 소비사회의 유연함 혹은 ‘따뜻함’ 포착하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이 북한 굿즈에 느끼는 언캐니를 관객에게 유머로 구사하고자 했다. 유머를 함께 나눈 관객들에게 북한 굿즈를 유통하고 각자의 집안에 한 자리씩 차지해 일상 소품으로 안착하는 과정을 추적하려고 했다. 남한에서 금지된 것만 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북한 굿즈들이 관객들의 일상 곳곳에서 파고들어 고무찬양 상징의 무용함과 소비사회의 강력함을 가시화해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위의 모든 과정은 가정형이다. ‘무엇무엇‘하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는 21세기 한복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목도했다.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의 마우스 휠이 유영하는 국제적인 무대는 우리가 어떤 시간대에 위치하는지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영상 속 변조된 보이스 오버는 우리가 위치한 남한이라는 국지적인 무대가 비동시적인 동시대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여전히 모든 표현물이 국가보안법의 점검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산 북한 굿즈를 사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국가정보원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본래 기획된 프로젝트가 가정형이 된 이유다.
시작은 미국에서 건너온 ‘The Great Leader Kim Il-sung’이라고 명기된 텀블러 이름이었다. 작가는 본래 기획한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해 다수의 북한 굿즈를 사들였다. 하지만 수상한 상품명 탓에 관세사무소와 통화를 한다. 관세사무소와의 통화에서 작가는 철없는 젊은이로 잠정적으로 위치 지어지며 ‘야단’을 맞는다. 주문자와 상품 리스트를 넘겨받은 국정원은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어 작가의 일반적인 정보를 모두 확인한 뒤 좀 더 구체적인 사적 정보들을 ‘탐문’하며 이적 행위 가능성을 가늠한다. 다시 관세사무소와 긴 실랑이 끝에 연락이 닿은 세관은 “아직 시기상조”이기에 구체적인 찬양 문구가 들어간 물건들은 통관 보류하고 나머지만 통관하겠다고 통보한다. 하지만 상품의 목적이 전시임을 분명히 인지했으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작가를 ‘회유’하며 종결짓는다. 예상치 못한 55일의 장정 끝에 그래도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작가는 안도했다. 하지만 며칠 뒤 작업실에 도착한 택배 박스 안에는 몇 개의 통관 보류된 상품들이 와있었고, 몇 개의 통관된 상품들은 보이지 않았다.
‘야단’과 ‘탐문’과 ‘회유’의 과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작가는 55일간의 여정 속에 내포한 연극성을 되돌아본다. 모두가 심각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북한 굿즈. 작가는 그동안 철없는 젊은이, 이적 행위 가능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되는 예술가 등을 역할을 수동적으로 부여받았다. 마치 남한이라는 무대 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장막에 둘러싸여 38선이라는 제 4의 벽을 둔 한 편의 연극에 참여한 것만 같았다.
반재하의 싱글채널 영상 제목인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은 노스롭 프라이(Northrop Frye)가 『비평의 해부』에서 정의한 희극의 캐릭터 유형에서 따왔다. 각각 관세사무소, 국정원, 세관을 비유적 혹은 직유적으로 일컫는다. 세 가지 유형의 캐릭터에 걸맞는 퍼포먼스 스크립트를 준비했다. 이는 영상 속 보이스 오버가 스크립트를 발현하는 퍼포머의 연기인지, 기관 직원의 공무 수행인지 경계를 교란하며 실재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통화 내내 수동적으로 역할을 부여받았던 작가는 이미지와 사운드, 스크립트 등 포스트 프로덕션을 거치며 비로소 수행성(performativity)을 획득한다. 철저한 계산 아래 이뤄진 것인 양 스크립트, 영상작업, 북한 굿즈를 진열하고 전시한다.
하지만 포스트 프로덕션의 가장 큰 동기는 이 사태를 증언하고 고발하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 가정형에 그쳤던 프로젝트에서 구사하려던 유머를 추구한다. 냉전의 잔재와 상품 생산의 언캐니를 드러내며 전시의 제목이 된 <따뜻한 전쟁>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한다면, 작가는 얼떨결에 아방가르드가 되어버린 꼴이다. 북한 굿즈의 안과 밖을 맴돌며 포착되는 언캐니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유머로 유통될 수 있을까?
따뜻한 전쟁
2018.12.28 - 2019.01.03
Art Mooak, Seoul 무악파출소, 서울
Supported by Art Mooak
후원: 무악파출소
마우스가 산만하게 딸깍거린다. 세계의 상품들을 유영하듯 마우스 휠이 미국의 오더-메이드 플랫폼을 넘나든다. 머그잔, 텀블러, 샤워 커튼, 베개, 티셔츠, 에코백 등의 일상적 소품들이 나열된다. 거기에 덧대어진 이미지들이 한눈에 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시각 이미지들이다. 위대한 영도자의 환한 미소부터 북한 체제의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텍스트, 또 그와 유사한 색감과 어법을 패러디하며 ‘구제’와 ‘힙함’을 넘나드는 디자인까지, 일상적 소품은 ‘북한’이라는 키워드로 엮인다. 반재하의 싱글 채널 영상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의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반재하 작가의 두 번째 유통 프로젝트다. 이번 <따뜻한 전쟁(Warm War)>은 지난 냉전(cold war) 시대의 잔재였던 이미지들이 희한하고 특별한 주문 제작 상품으로 변모하는 소비사회의 유연함 혹은 ‘따뜻함’ 포착하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이 북한 굿즈에 느끼는 언캐니를 관객에게 유머로 구사하고자 했다. 유머를 함께 나눈 관객들에게 북한 굿즈를 유통하고 각자의 집안에 한 자리씩 차지해 일상 소품으로 안착하는 과정을 추적하려고 했다. 남한에서 금지된 것만 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북한 굿즈들이 관객들의 일상 곳곳에서 파고들어 고무찬양 상징의 무용함과 소비사회의 강력함을 가시화해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위의 모든 과정은 가정형이다. ‘무엇무엇‘하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는 21세기 한복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목도했다.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의 마우스 휠이 유영하는 국제적인 무대는 우리가 어떤 시간대에 위치하는지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영상 속 변조된 보이스 오버는 우리가 위치한 남한이라는 국지적인 무대가 비동시적인 동시대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여전히 모든 표현물이 국가보안법의 점검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산 북한 굿즈를 사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국가정보원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본래 기획된 프로젝트가 가정형이 된 이유다.
시작은 미국에서 건너온 ‘The Great Leader Kim Il-sung’이라고 명기된 텀블러 이름이었다. 작가는 본래 기획한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해 다수의 북한 굿즈를 사들였다. 하지만 수상한 상품명 탓에 관세사무소와 통화를 한다. 관세사무소와의 통화에서 작가는 철없는 젊은이로 잠정적으로 위치 지어지며 ‘야단’을 맞는다. 주문자와 상품 리스트를 넘겨받은 국정원은 발신자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어 작가의 일반적인 정보를 모두 확인한 뒤 좀 더 구체적인 사적 정보들을 ‘탐문’하며 이적 행위 가능성을 가늠한다. 다시 관세사무소와 긴 실랑이 끝에 연락이 닿은 세관은 “아직 시기상조”이기에 구체적인 찬양 문구가 들어간 물건들은 통관 보류하고 나머지만 통관하겠다고 통보한다. 하지만 상품의 목적이 전시임을 분명히 인지했으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작가를 ‘회유’하며 종결짓는다. 예상치 못한 55일의 장정 끝에 그래도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작가는 안도했다. 하지만 며칠 뒤 작업실에 도착한 택배 박스 안에는 몇 개의 통관 보류된 상품들이 와있었고, 몇 개의 통관된 상품들은 보이지 않았다.
‘야단’과 ‘탐문’과 ‘회유’의 과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작가는 55일간의 여정 속에 내포한 연극성을 되돌아본다. 모두가 심각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북한 굿즈. 작가는 그동안 철없는 젊은이, 이적 행위 가능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되는 예술가 등을 역할을 수동적으로 부여받았다. 마치 남한이라는 무대 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장막에 둘러싸여 38선이라는 제 4의 벽을 둔 한 편의 연극에 참여한 것만 같았다.
반재하의 싱글채널 영상 제목인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은 노스롭 프라이(Northrop Frye)가 『비평의 해부』에서 정의한 희극의 캐릭터 유형에서 따왔다. 각각 관세사무소, 국정원, 세관을 비유적 혹은 직유적으로 일컫는다. 세 가지 유형의 캐릭터에 걸맞는 퍼포먼스 스크립트를 준비했다. 이는 영상 속 보이스 오버가 스크립트를 발현하는 퍼포머의 연기인지, 기관 직원의 공무 수행인지 경계를 교란하며 실재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통화 내내 수동적으로 역할을 부여받았던 작가는 이미지와 사운드, 스크립트 등 포스트 프로덕션을 거치며 비로소 수행성(performativity)을 획득한다. 철저한 계산 아래 이뤄진 것인 양 스크립트, 영상작업, 북한 굿즈를 진열하고 전시한다.
하지만 포스트 프로덕션의 가장 큰 동기는 이 사태를 증언하고 고발하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 가정형에 그쳤던 프로젝트에서 구사하려던 유머를 추구한다. 냉전의 잔재와 상품 생산의 언캐니를 드러내며 전시의 제목이 된 <따뜻한 전쟁>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한다면, 작가는 얼떨결에 아방가르드가 되어버린 꼴이다. 북한 굿즈의 안과 밖을 맴돌며 포착되는 언캐니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유머로 유통될 수 있을까?
협력 기획 조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