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HOME, SWEET HOME
메이크 홈, 스위트 홈
2024.03.07.-09.
Doosan Art Center Space 111, Seoul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서울
퍼포먼스, 가변크기, 약 50분
연출・주최・주관: 반재하
퍼포머: 고미랑, 박근영, 임가영, 표창연, 한주예슬
조연출: 박근영
프로듀서: 강재영
드라마터그: 김솔지
리서처: 임가영
인터뷰이: 장철규(가명), 의봉(가명), 최설미
음악감독: 오로민경
어플리케이션 개발: 조지훈
기술협력: 스튜디오 애니멀
그래픽・무대 디자인: 반재하
메이크 홈, 스위트 홈
2024.03.07.-09.
Doosan Art Center Space 111, Seoul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서울
퍼포먼스, 가변크기, 약 50분
연출・주최・주관: 반재하
퍼포머: 고미랑, 박근영, 임가영, 표창연, 한주예슬
조연출: 박근영
프로듀서: 강재영
드라마터그: 김솔지
리서처: 임가영
인터뷰이: 장철규(가명), 의봉(가명), 최설미
음악감독: 오로민경
어플리케이션 개발: 조지훈
기술협력: 스튜디오 애니멀
그래픽・무대 디자인: 반재하
관객을 위한 퍼포먼스 가이드
드라마터그 김솔지
MAKE HOME, SWEET HOME ?
이 공연은 여러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공연에 네트워크된 행위자들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행위자들은 무대에 펼쳐진 알고리즘을 순회합니다. 입력과 출력의 여정에서 제작되는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원초적인 이미지 생성 방식인 펜과 물감으로 그린 드로잉, 계획을 표준화된 추상적 질서로 구체화하는 디지털 평면도, 이미지를 3차원에 물적 배치하는 미니어처, 프롬프트에 의해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생성 이미지, 이 모든 것이 "이미지(image)"입니다. 닿을 수 없는 공간, 인터뷰이의 집(SWEET HOME)을 이미지로 구성(MAKE HOME)하는 이번 공연은 가상의 건축입니다. 우리는 공연의 러닝타임 동안 짓습니다.
MAKE HOME, SWEET HOME !
관객 여러분께서 1시간 남짓 무대에서 걷고, 음성과 소리에 집중하고, 스크린에서 모바일 기기로, 다시 퍼포머의 테이블로 시선을 옮기고, 투표에 참여하신다면, 여러분은 이 이미지 짓기에 동참하시게 됩니다. 시선을 지탱하는 스크린, 소리를 펼치는 스피커, 수십 명의 인터넷 접속을 유지하는 회선, 단어를 이미지로 산출하는 AI도 모두 건설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선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인 것이죠. 무대에 자리를 배정 받은 퍼포머와 백스테이지에 데스크를 펼친 오퍼레이터도 함께 수행합니다.
MAKE HOME, SWEET HOME =
여전히 공연이 왜 가상의 건축이라 불리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 혹은 모델은 멈춤 없는 거대 연산 과정에 투입되는 또 하나의 연산입니다. 이 연산은 AI가 경유하는 전지구적 연산을 지탱하는 동시에 연산의 순항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건축적’입니다. 허공에 지어진 건축물이 스스로 그 자체를 지탱하는 지지체이자,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하중에 맞서는 저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이 건축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공연 중 생성되는 이미지는 도대체 무엇을 구성한다는 것일까요? 함께 만드는 이미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는 분명 현존하는 집이었기 때문에 멀리서도 변함없이 인식되고 있는 집은, 무대에 선 행위자들에게는 닿을 수 없고, 지각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없던 집을 그려나가는 MAKE HOME, SWEET HOME에서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를 통해 그곳을 감지하게 됩니다. 감각하고자 가상으로 떠올린 이미지인 것이죠.
MAKE HOME, SWEET HOME #
이처럼 실제적이면서 가상의 성격을 띠는 ‘이미지 집짓기’는 경계를 넘어온 이들의 이야기에 방문하기를 시도합니다. 공연의 행위자들은 산출한 이미지를 태깅해 거대한 연산에 밀어 넣으며, 자연스러움 속에 머물러 있는 모순의 재감각에 관여합니다. 전지구적 연산 시스템의 자장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작동 속에서, 무대 위에서, 우리가 함께 밟아나가는 회로는 편향과 단절, 격차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예술적 시도일 수 있을까요.
드라마터그 김솔지
MAKE HOME, SWEET HOME ?
이 공연은 여러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공연에 네트워크된 행위자들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행위자들은 무대에 펼쳐진 알고리즘을 순회합니다. 입력과 출력의 여정에서 제작되는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원초적인 이미지 생성 방식인 펜과 물감으로 그린 드로잉, 계획을 표준화된 추상적 질서로 구체화하는 디지털 평면도, 이미지를 3차원에 물적 배치하는 미니어처, 프롬프트에 의해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생성 이미지, 이 모든 것이 "이미지(image)"입니다. 닿을 수 없는 공간, 인터뷰이의 집(SWEET HOME)을 이미지로 구성(MAKE HOME)하는 이번 공연은 가상의 건축입니다. 우리는 공연의 러닝타임 동안 짓습니다.
MAKE HOME, SWEET HOME !
관객 여러분께서 1시간 남짓 무대에서 걷고, 음성과 소리에 집중하고, 스크린에서 모바일 기기로, 다시 퍼포머의 테이블로 시선을 옮기고, 투표에 참여하신다면, 여러분은 이 이미지 짓기에 동참하시게 됩니다. 시선을 지탱하는 스크린, 소리를 펼치는 스피커, 수십 명의 인터넷 접속을 유지하는 회선, 단어를 이미지로 산출하는 AI도 모두 건설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선 인간과 비인간의 협업인 것이죠. 무대에 자리를 배정 받은 퍼포머와 백스테이지에 데스크를 펼친 오퍼레이터도 함께 수행합니다.
MAKE HOME, SWEET HOME =
여전히 공연이 왜 가상의 건축이라 불리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 혹은 모델은 멈춤 없는 거대 연산 과정에 투입되는 또 하나의 연산입니다. 이 연산은 AI가 경유하는 전지구적 연산을 지탱하는 동시에 연산의 순항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건축적’입니다. 허공에 지어진 건축물이 스스로 그 자체를 지탱하는 지지체이자,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하중에 맞서는 저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이 건축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공연 중 생성되는 이미지는 도대체 무엇을 구성한다는 것일까요? 함께 만드는 이미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는 분명 현존하는 집이었기 때문에 멀리서도 변함없이 인식되고 있는 집은, 무대에 선 행위자들에게는 닿을 수 없고, 지각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없던 집을 그려나가는 MAKE HOME, SWEET HOME에서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를 통해 그곳을 감지하게 됩니다. 감각하고자 가상으로 떠올린 이미지인 것이죠.
MAKE HOME, SWEET HOME #
이처럼 실제적이면서 가상의 성격을 띠는 ‘이미지 집짓기’는 경계를 넘어온 이들의 이야기에 방문하기를 시도합니다. 공연의 행위자들은 산출한 이미지를 태깅해 거대한 연산에 밀어 넣으며, 자연스러움 속에 머물러 있는 모순의 재감각에 관여합니다. 전지구적 연산 시스템의 자장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작동 속에서, 무대 위에서, 우리가 함께 밟아나가는 회로는 편향과 단절, 격차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예술적 시도일 수 있을까요.
연출노트: 오해의 퍼포먼스
연출 반재하
〈MAKE HOME, SWEET HOME〉의 최종적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공연의 구조와 행위의 종류, 타이밍까지 모두 설계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공연에서 중심이 되는 건 명확한 상보다 행위자들의 연결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연결망을 주선하고 촉진하고 단절하는 것, 제가 한 연출을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공연의 기획은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어떤 공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공간에 접근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너무 오랜 기간 금지되었다보니, 그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편협하고 경직돼 있지요. 편협하고 경직된 시선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여기이고, 여기서부터 감각을 재편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거나 구할 수 없는 데이터를 공연에서 쓰지 않기로 한 이유입니다.
연결망을 만들며 가장 피하려고 했던 건 행위자 간 위계였습니다. 이 공연은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살다 온 이들의 인터뷰에서 시작합니다. 여러 행위자를 거치며 그 모양은 변합니다. 하지만 각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원형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원형은 누구도 확인할 수 없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연결망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행위자와 행위자 사이에서 어떤 오해들이 오고 가는가? 저는 이 공연을 오해의 퍼포먼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야말로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시각화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많은 오해와 오인과 오독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출 반재하
〈MAKE HOME, SWEET HOME〉의 최종적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공연의 구조와 행위의 종류, 타이밍까지 모두 설계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공연에서 중심이 되는 건 명확한 상보다 행위자들의 연결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연결망을 주선하고 촉진하고 단절하는 것, 제가 한 연출을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공연의 기획은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어떤 공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공간에 접근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너무 오랜 기간 금지되었다보니, 그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편협하고 경직돼 있지요. 편협하고 경직된 시선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여기이고, 여기서부터 감각을 재편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거나 구할 수 없는 데이터를 공연에서 쓰지 않기로 한 이유입니다.
연결망을 만들며 가장 피하려고 했던 건 행위자 간 위계였습니다. 이 공연은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살다 온 이들의 인터뷰에서 시작합니다. 여러 행위자를 거치며 그 모양은 변합니다. 하지만 각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원형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원형은 누구도 확인할 수 없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연결망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행위자와 행위자 사이에서 어떤 오해들이 오고 가는가? 저는 이 공연을 오해의 퍼포먼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야말로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시각화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많은 오해와 오인과 오독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MAKE TRUTH, from SWEET NOISE
・태깅퍼포머 임가영
이 글은 〈MAKE HOME, SWEET HOME〉의 본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의 손에 주어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퍼포머가 무대 뒷편으로 퇴장하거나 오디오-비주얼 장치가 정보의 출력을 멈춘 상황에서, 관람자가 공간 전체를 한층 느긋하게 관찰할 기회를 얻은 - 즉 관객만이 공연의 주요 행위자로 남은 순간을 상상하며 글을 시작한다. 일종의 소강 상태에 접어든 공간에서 비로소 명확히 드러나는, 바닥을 가로지르는 선을 바라보자. 행위자-개체들 사이를 관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선은 그들간의 논리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적 기호이자, 혹은 이들 사이를 흐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이동 경로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럼 이 선을 따라 이동‘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공연의 몇몇 과정을 떠올려 본다. 학습된 데이터 및 프롬프트에 따라 생성된 이미지가 무대 전면 벽 우측의 스크린에 투사되면, 이미지는 퍼포머의 묘사로 전환되어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 사운드로 출력된다. 이 청각 정보에 의존해 만들어진 제작 퍼포머의 작업물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디지털화되고, 이 디지털 이미지는 학습 데이터셋의 일부로 되먹임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재차 번역 혹은 변형을 거쳐가는 것의 실체는 ‘정보’ 혹은 ‘데이터’ 이다. 데이터를 전달받고 생성하고 또 다시 되먹임하는, 펼쳐진 회로도를 연상시키는 무대의 구조는 AI 알고리즘의 공간적 번역물이라고 할 수 있다.
펼쳐진 알고리즘 위를 횡단하거나 멈춰서서 듣고 보는 관람자 역시 그 체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관람자는 공연 중간 이루어지는 실시간 투표를 통해 무대 위 행위자들 사이의 협업, 혹은 대화에 동참한다. 관객의 투표를 공연 구조에 연결시키는 회로도의 이미지는 언뜻 60년대 사이버네틱스 연구자이자 공연예술가인 고든 파스크(Gordon Pask)의 ‘사이버네틱 시어터(Cybernetic Theatre)’를 연상시킨다. 실제 실현된 적 없는 이 기획은 관객이 좌석 옆에 설치된 투표 버튼을 통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결정해나가는 연극을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MAKE HOME, SWEET HOME〉과 관객을 매개하는 것은 투표라는 장치만이 아니다. 알고리즘 순서도와 사이버네틱 시어터의 구조 자체가, 관객의 상상력이라는 힘을 빌어 완성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스크린을 통해서 떠오르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또 때로는 눈 앞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조형 작품을 통해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거나 경합하면서, 직접 가서 보지 못할 장소의 집을 점차 지어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들은 ‘진실’(truth)과 얼마나 가깝고 또 멀까? 인터뷰이가 살았던 집은 정말 이렇게 생겼을까? 누구에게도 이런 판단의 역할이 맡겨져 있지는 않다. 다만 공연의 행위자, 정확히는 태깅 퍼포머는 기계가 어떤 데이터를 참(truth)으로 판별할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 안을 순환하는 데이터를 떠나 보다 넓은 맥락에서, 우리 모두는 지정학적 한계 때문에 생긴 먼 거리의 흐릿한 이미지를 다름 아닌 공연 현장 안에서의 ‘실측’을 통해 한층 뚜렷한 이미지로 조정하는 역할, 그라운드 트루싱(Ground-truhting)**의 과제를 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이미지, 혹은 감각을 조정한다는 것은 단지 노이즈를 매끈하게 제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흐릿한 경계면의 노이즈 속에서 보다 정밀한 형태를 발견해내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은 앞서 들었던 인터뷰에서 생략되었던 각 인터뷰이의 소회를 들을 수 있다. 인터뷰이는 집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될 수 없는 주관적 느낌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 공연의 AI 프롬프트에서 탈락한 이 언어들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이미지 생성 이전의 노이즈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노이즈를 보고 듣고자 하면서, 기계의 한계를 우회하는 동시에 다시 한번 기계와 협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기술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길이 될지 모른다.
・태깅퍼포머 임가영
이 글은 〈MAKE HOME, SWEET HOME〉의 본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의 손에 주어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 퍼포머가 무대 뒷편으로 퇴장하거나 오디오-비주얼 장치가 정보의 출력을 멈춘 상황에서, 관람자가 공간 전체를 한층 느긋하게 관찰할 기회를 얻은 - 즉 관객만이 공연의 주요 행위자로 남은 순간을 상상하며 글을 시작한다. 일종의 소강 상태에 접어든 공간에서 비로소 명확히 드러나는, 바닥을 가로지르는 선을 바라보자. 행위자-개체들 사이를 관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선은 그들간의 논리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적 기호이자, 혹은 이들 사이를 흐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이동 경로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럼 이 선을 따라 이동‘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공연의 몇몇 과정을 떠올려 본다. 학습된 데이터 및 프롬프트에 따라 생성된 이미지가 무대 전면 벽 우측의 스크린에 투사되면, 이미지는 퍼포머의 묘사로 전환되어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 사운드로 출력된다. 이 청각 정보에 의존해 만들어진 제작 퍼포머의 작업물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디지털화되고, 이 디지털 이미지는 학습 데이터셋의 일부로 되먹임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재차 번역 혹은 변형을 거쳐가는 것의 실체는 ‘정보’ 혹은 ‘데이터’ 이다. 데이터를 전달받고 생성하고 또 다시 되먹임하는, 펼쳐진 회로도를 연상시키는 무대의 구조는 AI 알고리즘의 공간적 번역물이라고 할 수 있다.
펼쳐진 알고리즘 위를 횡단하거나 멈춰서서 듣고 보는 관람자 역시 그 체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관람자는 공연 중간 이루어지는 실시간 투표를 통해 무대 위 행위자들 사이의 협업, 혹은 대화에 동참한다. 관객의 투표를 공연 구조에 연결시키는 회로도의 이미지는 언뜻 60년대 사이버네틱스 연구자이자 공연예술가인 고든 파스크(Gordon Pask)의 ‘사이버네틱 시어터(Cybernetic Theatre)’를 연상시킨다. 실제 실현된 적 없는 이 기획은 관객이 좌석 옆에 설치된 투표 버튼을 통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결정해나가는 연극을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MAKE HOME, SWEET HOME〉과 관객을 매개하는 것은 투표라는 장치만이 아니다. 알고리즘 순서도와 사이버네틱 시어터의 구조 자체가, 관객의 상상력이라는 힘을 빌어 완성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스크린을 통해서 떠오르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또 때로는 눈 앞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조형 작품을 통해 기계와 인간이 협력하거나 경합하면서, 직접 가서 보지 못할 장소의 집을 점차 지어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들은 ‘진실’(truth)과 얼마나 가깝고 또 멀까? 인터뷰이가 살았던 집은 정말 이렇게 생겼을까? 누구에게도 이런 판단의 역할이 맡겨져 있지는 않다. 다만 공연의 행위자, 정확히는 태깅 퍼포머는 기계가 어떤 데이터를 참(truth)으로 판별할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 안을 순환하는 데이터를 떠나 보다 넓은 맥락에서, 우리 모두는 지정학적 한계 때문에 생긴 먼 거리의 흐릿한 이미지를 다름 아닌 공연 현장 안에서의 ‘실측’을 통해 한층 뚜렷한 이미지로 조정하는 역할, 그라운드 트루싱(Ground-truhting)**의 과제를 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이미지, 혹은 감각을 조정한다는 것은 단지 노이즈를 매끈하게 제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흐릿한 경계면의 노이즈 속에서 보다 정밀한 형태를 발견해내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은 앞서 들었던 인터뷰에서 생략되었던 각 인터뷰이의 소회를 들을 수 있다. 인터뷰이는 집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될 수 없는 주관적 느낌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 공연의 AI 프롬프트에서 탈락한 이 언어들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이미지 생성 이전의 노이즈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노이즈를 보고 듣고자 하면서, 기계의 한계를 우회하는 동시에 다시 한번 기계와 협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기술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길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