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Room: Amur River, border, camera, carer, downsizing, Èlúnchūnzú, foot-and-mouth disease, landscape, MǎnzhōuGuó, metastasis, paramnesia, street cleaning
러닝룸: 간병인, 거리입양, 구제역, 국경, 기시감, 다운사이징, 만주국, 오로첸, 전이, 카메라, 풍경, 흑룡강
2019.10.24 - 11.03
Gallery Azit, Seoul 사진문화공간 아지트, 서울
Participants: Youngmean Kang, Jaeha Ban, Minwook Oh, Gihyun Jo, Daewoong Ahn, Haemin Ryu
Supported by Seoul Art Space Mullae, GS SHOP
참여자: 강영민, 류혜민, 반재하, 안대웅, 오민욱, 조기현
후원: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GS SHOP
1. 《러닝룸(Running Room)》은 완벽한 계획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 보고자 하는 반계획이다. 이 큐레이토리얼의 방법론은 안대웅이 2016-7년 사이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에서 〈실험실〉이라는 프로젝트를 예닐곱 명의 예술가와 함께 진행하면서 처음 채택했다. 완성의 관념을 최대한 유예하는 한편, 그 전 단계에서 착상된 임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존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확대하고자 했다. 〈실험실〉에서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목적 없는' 피드백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차례 주고받았고, 그 과정-내-결과를 예술가는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임의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했다. 《러닝룸》도 이 과정을 따랐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대림동이라는 특정한 장소로부터 튀어나온 다양한 아이디어에 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이 피드백은 차라리 자유연상이라고 불러야할 정도로 임의적이고 충동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예술가로부터 나온 산발적인 키워드가 간병인, 거리입양, 구제역, 국경, 기시감, 다운사이징, 만주국, 오로첸, 전이, 카메라, 풍경, 흑룡강이다. 이 일련의 단어는 《러닝룸》의 부제로 사용되었다.
2. 안산 원곡동에 위치한 리트머스는 2007년 개관한 이래로 다문화주의를 성찰해왔던 안산의 대안공간으로, 류혜민은 2013-5년 사이 여기에서 일하며 페스티벌, 전시, 언어 학습 동아리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한편의 자괴감이 있었다. 이주민과 문화적 관계 맺기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주민을 주제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현실과 유리된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동반되었다. 정작 이주민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인 학습이 부족했다고 느꼈고 아시아 문화연구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원곡동보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주민의 지역색이 강한 대림동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은 돌이켜보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이렇게 《러닝룸》의 주제는 원곡동으로부터 시작해 대림동을 경유한다.
3.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은 오늘날 관례화된 미술 생산의 프로토콜에 대한 대안으로 구상되었다. 미술 지원 제도는 계획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교부신청, 작업, 결과보고, 정산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미술을 놓는다. 이 행정적 합리성은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아마 오늘날 프로덕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프레젠테이션 파일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드와 포토샵으로 콜라주된 완벽한 미래의 약속, 지원의 가부를 판단하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이것이며, 이후의 과정은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말하자면, 미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원 제도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과 끝으로 설정함으로써 미술의 가능성을 시작부터 제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술은 이런 작업 생산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가? 이것이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이 제기한 질문이다.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대림동은 양꼬치로 일축된다. 공사장에서 일해 열심히 돈을 모아 양꼬치 식당을 여는 것이 중국 조선족 '중산층의 꿈'이었다면, 양꼬치 식당이 발원한 곳이 대림동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짜'를 향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대림동 양꼬치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림동은 양꼬치이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는 등식을 본다. 다른 한편에서 대림동은 탈법과 범죄가 난무하는 장소로 종종 재현된다. 최근 대림동 여경 사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데, "여경무용론"이 들썩이는 가운데 대림동이란 지명과 술 취한 40대 조선족은 아주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여기서 대림동은 "범죄도시"이며 치안의 대상이라는 등식을 본다.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양꼬치와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40대 조선족의 쾌락적 범죄는 통약불가능하며, 고로 제어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림동을 둘러싼 감각은 불평등하게 배치된다. 이를 통해서만 대림동은 유의미한 것이 된다. 치안이 작동하고 양꼬치의 쾌락을 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실제로 가본 대림동에서 양꼬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건두부나 중국고추, 호박을 닮은 연변 참외를 파는 상점 등 이들의 삶의 터전은 비단 양꼬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또 다른 종류의 쾌락은 《러닝룸》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다.
5. 《러닝룸》은 대림동이란 특정한 지역을 스펙트럼 삼아 경계나 이주, 이동, 인권 및 시민권과 동아시아의 이주 역사에 관한 주제를 성찰하려고 했다. 이러한 주제는 시리아 난민이나 탈북자 이슈 등 주로 국제적인 이주의 상황으로 익숙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으로 대변되는 우리-내-다문화는 더 자주 논의되지 않아왔다. 조선족, 재중 동포, 중국 동포, 중국 조선족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형성한 대림동의 풍경은 동아시아의 초국적 이주 역사의 한 조각과 다름없다. 19세기 말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적 상황과 20세기 일제를 중심으로 한 제국 형성에 따라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의 혹은 타의로 이동을 겪었고,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국가 형성과 국민 건설을 해가는 시기에 조선 반도로 귀국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중국 연변에 잔류한 조선인들은 중국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시민권을 얻게 된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고, 1991년 소련의 붕괴, 1992년 이후 중국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로 인한 단절이 회복되고 글로벌 경제의 형성에 따라 역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요인으로 중국 조선족의 귀환,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대림동이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인 거주지이긴 하지만 이들의 삶의 터전은 대림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홍대나 명동의 화장품 가게 직원에서부터 건설 현장, 주방 업무, 청소 노동, 요양 병원의 간병인까지 중국 조선족은 이미 대림동 뿐만 아니라 신림동, 신대방동, 자양동 건국대 주변, 경기도 수원역 부근, 성남 수진동, 안산 원곡동을 제외해도 어디에나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6. 러닝룸은 할 포스터가 제안한 비평 용어이지만, 사실은 칼 크라우스의 spielraum의 포스터 식 번역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유예 공간, 문자 그대로, 달아나는 방이라는 뜻이다. 이런 방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는 자명한데, 지금을 '지원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이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고, 찰나의 프레젠테이션의 시간에는 선택과 배제의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힘이 지금의 한국 미술계를 만들었다면 어떨까? 하나의 담론이 어디로부턴가 솟아나면 정크푸드처럼 게걸스럽게 소비되고 마는데, 웃기게도 제도는 그것이 새롭다고 지원한다. 어디에서나 어디서 본 듯한 말과 사물이 있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안 중요해보이지도 않은, 내일이면 이 전시장에는 친숙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그런 것이 전시될 것이다. 미술은 지원 제도의 장식일까? 미술은 어쩌면 이페메라(ephemera)와, 심지어 미술계는 정크스페이스와 크게 다를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예술이 이런 것과 달라야 한다면, 포스터가 제시한 이 준자율적인(semi-autonomious) 작은 방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원금을 연료 삼아 무한 복귀하는 예술 비스무레한 것, 예술 비스무레한 것을 연료삼아 무한히 공회전하는 지원 제도로부터 잠깐 숨을 돌려,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은 예술의 준자율적 감각을 다시 떠올리고자 했다.
러닝룸: 간병인, 거리입양, 구제역, 국경, 기시감, 다운사이징, 만주국, 오로첸, 전이, 카메라, 풍경, 흑룡강
2019.10.24 - 11.03
Gallery Azit, Seoul 사진문화공간 아지트, 서울
Participants: Youngmean Kang, Jaeha Ban, Minwook Oh, Gihyun Jo, Daewoong Ahn, Haemin Ryu
Supported by Seoul Art Space Mullae, GS SHOP
참여자: 강영민, 류혜민, 반재하, 안대웅, 오민욱, 조기현
후원: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GS SHOP
1. 《러닝룸(Running Room)》은 완벽한 계획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 보고자 하는 반계획이다. 이 큐레이토리얼의 방법론은 안대웅이 2016-7년 사이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에서 〈실험실〉이라는 프로젝트를 예닐곱 명의 예술가와 함께 진행하면서 처음 채택했다. 완성의 관념을 최대한 유예하는 한편, 그 전 단계에서 착상된 임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존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확대하고자 했다. 〈실험실〉에서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목적 없는' 피드백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차례 주고받았고, 그 과정-내-결과를 예술가는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임의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했다. 《러닝룸》도 이 과정을 따랐다. 큐레이터와 예술가는 대림동이라는 특정한 장소로부터 튀어나온 다양한 아이디어에 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이 피드백은 차라리 자유연상이라고 불러야할 정도로 임의적이고 충동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예술가로부터 나온 산발적인 키워드가 간병인, 거리입양, 구제역, 국경, 기시감, 다운사이징, 만주국, 오로첸, 전이, 카메라, 풍경, 흑룡강이다. 이 일련의 단어는 《러닝룸》의 부제로 사용되었다.
2. 안산 원곡동에 위치한 리트머스는 2007년 개관한 이래로 다문화주의를 성찰해왔던 안산의 대안공간으로, 류혜민은 2013-5년 사이 여기에서 일하며 페스티벌, 전시, 언어 학습 동아리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한편의 자괴감이 있었다. 이주민과 문화적 관계 맺기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주민을 주제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현실과 유리된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동반되었다. 정작 이주민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인 학습이 부족했다고 느꼈고 아시아 문화연구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원곡동보다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주민의 지역색이 강한 대림동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은 돌이켜보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이렇게 《러닝룸》의 주제는 원곡동으로부터 시작해 대림동을 경유한다.
3.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은 오늘날 관례화된 미술 생산의 프로토콜에 대한 대안으로 구상되었다. 미술 지원 제도는 계획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교부신청, 작업, 결과보고, 정산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미술을 놓는다. 이 행정적 합리성은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아마 오늘날 프로덕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프레젠테이션 파일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드와 포토샵으로 콜라주된 완벽한 미래의 약속, 지원의 가부를 판단하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이것이며, 이후의 과정은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말하자면, 미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원 제도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과 끝으로 설정함으로써 미술의 가능성을 시작부터 제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술은 이런 작업 생산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가? 이것이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이 제기한 질문이다.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대림동은 양꼬치로 일축된다. 공사장에서 일해 열심히 돈을 모아 양꼬치 식당을 여는 것이 중국 조선족 '중산층의 꿈'이었다면, 양꼬치 식당이 발원한 곳이 대림동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짜'를 향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대림동 양꼬치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림동은 양꼬치이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는 등식을 본다. 다른 한편에서 대림동은 탈법과 범죄가 난무하는 장소로 종종 재현된다. 최근 대림동 여경 사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데, "여경무용론"이 들썩이는 가운데 대림동이란 지명과 술 취한 40대 조선족은 아주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여기서 대림동은 "범죄도시"이며 치안의 대상이라는 등식을 본다.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양꼬치와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40대 조선족의 쾌락적 범죄는 통약불가능하며, 고로 제어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림동을 둘러싼 감각은 불평등하게 배치된다. 이를 통해서만 대림동은 유의미한 것이 된다. 치안이 작동하고 양꼬치의 쾌락을 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실제로 가본 대림동에서 양꼬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건두부나 중국고추, 호박을 닮은 연변 참외를 파는 상점 등 이들의 삶의 터전은 비단 양꼬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또 다른 종류의 쾌락은 《러닝룸》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다.
5. 《러닝룸》은 대림동이란 특정한 지역을 스펙트럼 삼아 경계나 이주, 이동, 인권 및 시민권과 동아시아의 이주 역사에 관한 주제를 성찰하려고 했다. 이러한 주제는 시리아 난민이나 탈북자 이슈 등 주로 국제적인 이주의 상황으로 익숙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으로 대변되는 우리-내-다문화는 더 자주 논의되지 않아왔다. 조선족, 재중 동포, 중국 동포, 중국 조선족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형성한 대림동의 풍경은 동아시아의 초국적 이주 역사의 한 조각과 다름없다. 19세기 말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적 상황과 20세기 일제를 중심으로 한 제국 형성에 따라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의 혹은 타의로 이동을 겪었고,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국가 형성과 국민 건설을 해가는 시기에 조선 반도로 귀국하지 못하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중국 연변에 잔류한 조선인들은 중국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시민권을 얻게 된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고, 1991년 소련의 붕괴, 1992년 이후 중국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로 인한 단절이 회복되고 글로벌 경제의 형성에 따라 역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요인으로 중국 조선족의 귀환,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대림동이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인 거주지이긴 하지만 이들의 삶의 터전은 대림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홍대나 명동의 화장품 가게 직원에서부터 건설 현장, 주방 업무, 청소 노동, 요양 병원의 간병인까지 중국 조선족은 이미 대림동 뿐만 아니라 신림동, 신대방동, 자양동 건국대 주변, 경기도 수원역 부근, 성남 수진동, 안산 원곡동을 제외해도 어디에나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6. 러닝룸은 할 포스터가 제안한 비평 용어이지만, 사실은 칼 크라우스의 spielraum의 포스터 식 번역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유예 공간, 문자 그대로, 달아나는 방이라는 뜻이다. 이런 방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는 자명한데, 지금을 '지원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이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고, 찰나의 프레젠테이션의 시간에는 선택과 배제의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힘이 지금의 한국 미술계를 만들었다면 어떨까? 하나의 담론이 어디로부턴가 솟아나면 정크푸드처럼 게걸스럽게 소비되고 마는데, 웃기게도 제도는 그것이 새롭다고 지원한다. 어디에서나 어디서 본 듯한 말과 사물이 있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안 중요해보이지도 않은, 내일이면 이 전시장에는 친숙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그런 것이 전시될 것이다. 미술은 지원 제도의 장식일까? 미술은 어쩌면 이페메라(ephemera)와, 심지어 미술계는 정크스페이스와 크게 다를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예술이 이런 것과 달라야 한다면, 포스터가 제시한 이 준자율적인(semi-autonomious) 작은 방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원금을 연료 삼아 무한 복귀하는 예술 비스무레한 것, 예술 비스무레한 것을 연료삼아 무한히 공회전하는 지원 제도로부터 잠깐 숨을 돌려, 《러닝룸》의 큐레이토리얼은 예술의 준자율적 감각을 다시 떠올리고자 했다.
안대웅, 류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