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 Jaeha 반재하
Vector of Oppression
억압의 벡터
2020.11.18 - 11.27

SPACE HEEM, Basan 공간 힘, 부산

Host: Busan International Video Art Festival
Subject: Busan International Video Art Festival
Supported by Busan Metropolitan City Busan Cultural Foundation
Curator: hanryang Kim, Pyoungjoo Seo
Participated Artists: Ro Caminal, Kawita Vatanajyankur, Shailesh B.R, Tsering Motup siddho, Minjung Kim, Jaeha Ban, Hana Yoo, Youngchan Ko, Hansol Bae, Jaehoon Choi

주최: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발
주관: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발
후원: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큐레이터: 김한량, 서평주
참여 작가: Ro Caminal, Kawita Vatanajyankur, Shailesh B.R, Tsering Motup siddho, 김민정, 반재하, 유하나, 고영찬, 배한솔, 최재훈



사건과 이미지, 변수의 좌표계

이미지는 좌표계에서 끊임없이 값을 설정하며 도래한다. 이미지의 발화는 사건이 발현되는 지정학적 위치, 제도(Institution)의 방향, 지배적 힘 등의 작용으로 ‘변수(외부 작용)’와 함께 제시된다. 이미지가 도출하는 값은 시간성에 기민하게 반응하기에 명명된 위치, 방향, 힘을 변경할 수 있고 다중적 좌표계를 구성한다. 즉 좌표계에서 변수의 작동은 사건을 구성하는 요소를 재설정하여 기존의 지각과 해석을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이다. 이미지의 좌표계가 변수에 의해 재설정되고 다중적 층위를 지니는 것은 일련의 사건이 개인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 궤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궤도의 구성은 일정하게 ‘일치’하지 않는바, 도래하는 이미지가 단일한 사건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다수의 사건과 이미지에 접속하는 지점은 다중적 좌표계를 분석할 척도를 제공한다. 


사건–이미지 / 질서–이미지

일련의 질서를 부여받은 이미지는 그 자체로 질서–이미지로 도래한다. 질서–이미지가 포괄하는 일련의 사건은 좌표계에서 복잡한 ‘벡터’를 그린다. ‘임시적’질서 속에서 이미지 간 접속은 좌표계를 재설정하면서 시간으로부터 분화하는 사건-이미지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미지는 사건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질서는 이미지가 가시화하는 작용을 심화시킨다. 자크 라캉이 “너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1고 언급한 것처럼 이미지들과 그 자체로 형상화된 질서는 충족의 수단으로 이미지의 욕망을 배반하고, 욕망을 죽음으로 밀어내며 옭아매는 것이 아닌, 특정한 값과 보편적 값이 결부하고, 상충하는 ‘이유’를 내밀하게 질문하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이미지가 발현한 다중적 사건을 조합한다.
 
  “예술은 과거와 미래, 옛것과 새것 사이의 중간 세계에 끝없이 유예되는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 자체를 다시 한 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고유의 삶에 척도로 제공할 수 있는 공간,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매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2 — Giorgio Agamben

    질서-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 명명된 ‘억압의 벡터’는 사건-이미지들 속에서 발생하는 이질적 요소, 질서–이미지와 연결하면서 작용하는 변수와 능동적 관계를 맺는다. 일련의 사건–이미지–세계를 마주할 때부터 형성되는 무형의 계급 구조, 지배적 문화의 권력이 존재를 속박하는 강제성, 고정된 성 역할이 부여한 노동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산하는 물신주의, 수동적으로 인식되고 사회적 무게를 짊어진 존재의 발화, 혐오로 기피되는 대상에 관한 질문, 다른 세계의 특정성을 계몽적 정언명령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념, 이데올로기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남긴 상흔, 국가가 보장하는 형식적 자유, 상반된 장소에서 개발이 이루어지는 모순–와 매개한 질서–이미지의 벡터는 현재하는 지배적 시나리오가 양산하는 문제와 은폐된 지점을 건드린다.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 무섭기는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아이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걷다가 서기를 반복한다. 길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몸을 숨길 곳을 찾거나 막연히 나지막한 노래를 의지 삼아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모름지기 이러한 노래는 안정되고 고요한 중심의 스케치로서 카오스의 한가운데서 안정과 고요함을 가져다준다. 아이는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어딘가로 도약하거나 걸음걸이를 잰걸음으로 했다가 느린 걸음으로 바꾸거나 할지도 모른다. 노래는 카오스 속에서 날아올라 다시 카오스 한가운데서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래는 언제 흩어져버릴지 모르는 위협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리아드네는 언제나 한 가지 음색을 울려 퍼뜨리고 있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김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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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영상예술의 활성화와 실험적 미술 형식을 독려하기 위해 2004년부터 시작된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벌의 심사를 맡게 되어 영광이다. 창립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한 것처럼 이 페스티발의 존립 역시 순탄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며 여러 사람들이 노력해 온 여정일 것이다. 마치 인간의 삶처럼, 작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처럼, 특히 지금과 같은 팬데믹의 세계처럼 닫혔다, 열렸다, 또 닫혔다가 좀 더 넓은 문이 열리기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발에서 내건 주제는 ‹억압의 벡터›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억압 받고 있는가. 억압의 이미지는 이미 뉴스의 영상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무섭고 괴로운 억압이란, 다름 아닌 개인들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SNS를 통해 누구나 발언할 수 있지만, 더욱 더 편파적으로 나뉘는 여론으로 인해 국가가 아닌 스스로 검열하게 되었다. 더욱이 영상물의 제작도 방송국이나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민정의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붉은 색 스크린은 우리의 시각, 그리고 시선을 리셋한다. 사각형은 여러 색으로 혼합되고, 점멸하면 곧 카메라 렌즈는 우리의 눈을 동굴로 인도한다. 식민지 시기 항쟁과 학살의 상흔이 남아 있는 제주 오름 곳곳의 벙커들을 주요 장소로 삼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본다는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하나의 ‹시체의 인류학›은 죽음에 대한 인류 공통의 관심사를 건드리면서도, 조금은 다른 접근을 한다. (죽은)인체, 무덤 등의 이미지와 함께 작품을 이끌어 가는 목소리는 죽음에 대해 어떠한 온정적 애도도 없이 무자비할 정도로 차갑게 분석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방식은 혐오를 넘어서서, 결국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향하게 한다.

    반재하의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은 작가가 인터넷 쇼핑을 통해 북한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인쇄된 굿즈를 구매한 이후, 그 제품들을 받기까지의 과정-세관사무소, 국정원, 세관 등-을 그린다. 오로지 인터넷 화면과 전화 통화 녹음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성은 ‘80일 간의 세계일주’보다 더 뜨거운 모험의 55일을 효과적으로 기록한다.

    그밖에 경쟁작에 오른 7편의 작품들도 우수했으나, 부산국제비디오페스티발의 성격과 작품 상영 환경을 고려한 결과다. 심사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해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작가들의 작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국내 작가 출품작의 서브타이틀이 영문을 병기하고 있어, 향후 국제적 무대로 나아가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호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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